습작과 망작의 방

페리숑 컴플렉스

Note

#페리숑컴플렉스


  1. 도움 받은 자가 도와준 이에게 그 직후에는 고마워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고마움은 (언젠가 빚을 갚아야 한다는) 부담으로 변질되어 도움의 가치를 조금씩 훼손시키며 상대를 점차 피하고 증오해가는 과정은 인간사에서 드물지 않다. 페리숑 컴플렉스이다.


  2. 19세기 프랑스 극작가 외젠 라비슈의 <페리숑씨의 여행>에서, 페리숑씨는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은인의 도움을 시간이 지날수록 과소평가하려 애쓰지만 정작 자신이 은혜를 베풀어준 사람에겐 호감을 느껴 자신의 딸과 결혼까지 시키려한다.


  3. 인간의 심리 기저에는, 자신이 도움을 받은 사람이라는 사실은 부채감에 잊고 싶어 하는 반면, 자신이 누군가에게 도움을 준 것에 대해서는 자랑스러운 마음에 늘 기억하고 싶기에 이런 괴리감이 발생하는 것이다.


@Dr_Cheon_Keunah 천근아, 세브란스병원 소아정신과 교수




  조금 단순화하자면 내가 많이 사 준 사람은 나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생각에 나를 점점 기피하게 되고, 반대로 나에게 많이 사 준 사람은 나에게 호감(또는 받을 것)을 갖고 있어서 좋은 관계가 유지된다는 것이겠지.

  다른 시각에서 보자면 남에게 많이 베푸는 삶을 살았던 사람은 주변에 남아 있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다른 사람에게 베풀고 살았는데 나에게 돌아오는 것도 남는 것도 없었다더라 하는 말들이 바로 이런 경우에 해당되는 것 같다.

  전부터 느꼈던 것들이 피부로 와닿을 정도가 되다 보니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진다. 내가 과연 잘 살고 있는 것인가, 나는 앞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 것인가 등등.